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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에서 시작된 의식의 흐름

minigb 2021. 12. 27. 01:11

1.
며칠 전에 계란 삶았는데 껍질이 잘 안 까져서
껍질이 잘 까지도록 계란 삶는 방법을 터득하겠다는 오기가 생겨서 40개 정도 삶은 적이 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계란을 끓는 물에 넣어야 한다는 거다.
왜 그런지에 대한 과학적인 이유는 유튜브 채널 캐삼의
https://youtu.be/22vXmLjWmak

여기에 아주 잘 나와 있다.


2.
계란은 반숙이 최고다.
https://youtu.be/VM6n2mh64gs

여기 보면 7분 정도 삶으면 아주 이상적인 반숙이 된다고 한다.
4~5분 정도만 삶아서 노른자가 흘러내리는 상태의 계란도 매우 맛있지만
어느 정도는 익어야 껍질이 잘 까지기 때문에 반숙란으로 타협하기로 했다.


3.
그리고 여러분 혹시 그거 알고 있으셨는가?
반숙란이라도 계란 노른자가 흰자에서 아주 잘 떨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숙란이 완숙란보다 노른자가 더 잘 떨어진다.
반숙란이 노른자가 잘 안 분리될 거 같아서 계란 전체 중에 절반 정도는 노른자 분리용으로 완숙으로 삶았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완숙란은 가끔 노른자가 바스러지는 반면에 반숙은 노른자 내부에 응집력이 있어서 잘 안 바스러지고 굉장히 깔끔하게 떨어진다.


4.
다시 캐삼으로 돌아와서
위 영상의 썸네일을 보면 이게 어떤 내용일 것 같은가.
계란을 몇 분 삶으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에 관한 내용일 거라고 누구나 생각할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상에는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있다.
영상 후반부에는 7분 삶아서 만든 반숙란으로 계란장 만드는 방법도 함께 나와 있다.

그런데 썸네일에서는 계란장에 대한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영상 제목에도

이런 식으로 계란장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는 걸 아주 작은 부분으로만 보여주고 있다.


5.
그렇지만 계란장을 만드는 레시피도 하나의 별개의 영상으로 제작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임팩트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렇게 영상을 묶어두면 계란장 레시피가 궁금해서 검색한 사람 중 이 영상에 유입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만약 두 가지 내용을 각각 다른 영상으로 만든다면
1) 계란 몇 분 삶으면 어떻게 되나요?
2) 계란장 어떻게 만드나요?
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청자가 모두 이 채널의 영상에 유입될 것이고
동영상 길이도 2분 30초 정도로 짧아질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찾아보려는 사람들의 니즈에도 좀 더 부합할 거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가지 내용을 한 영상에 담음으로써 얻는 장점이 전혀 없어보인다...
'계란을 반숙으로 삶는다 -> 이걸로 계란장 만들면 좋다'의 흐름은 '다음 영상에서는 이렇게 만든 반숙란으로 계란장 만드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정도의 연결고리로만 나타내면 충분할 거 같다.


6.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예전에 어떤 기회로 Zungle이라는 회사 대표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Zungle은 골전도 이어폰이 탑재된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회사다.
간단히 말하면 골전도 이어폰인데 선글라스의 형태를 띠는 거다.

https://www.zungleinc.com/

이 강연에서 대표님께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청중 중 한 분이 제품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질문했는데,
그때 대표님께서 선글라스에 여러 가지 기능을 넣을 수 있었겠지만, 결국 다 버리고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하는 데 집중했다고 하셨다.
선글라스를 끼면 블루투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그 특징 하나에 집중하셨다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캐삼 채널 영상을 보다가 이 생각이 나면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7.
그러다 또 문득 든 생각이,
Zungle 대표님의 강연을 들은 게 2016년이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는데,
그때 당시에는 이 제품이 너무나도 획기적으로 보였고, 이미 많은 회사에서 콜라보 제의도 받으신 상태였고, 정말 성공할 거 같았지만
회사 일이 더는 진전되고 있지 않은 거 같다...
회사 사이트만 보더라도 몇년 째 파격 세일 중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음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많이 쓰긴 하지만 항상 쓰는 건 아니고
그래서 이 선글라스는 결국 이어폰을 대체할 수 없고
더군다나 이건 골전도 이어폰이니까 그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니면 2016년 말에 애플에서 에어팟을 출시했는데, 그럼으로써 애플 유저들이 무선이어폰을 살 때 다 에어팟을 사게 돼서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Zungle의 제품이 특별한 장점을 가진 건 아니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께서 강연하실 때
스타트업이 아무리 성공한 거 같아 보여도 3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3년이... 쉽지 않으셨다.
세상이 정말 빠르게 바뀌고 있구나...
그냥 그런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8.
다 적고 보니 이 글의 제목에는 문법 오류가 있다.
계란에서 시작된 의식의 흐름
여기서 '시작된'이라는 관형어가 수식하는 게 '의식'인지 '흐름'인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계란에서 시작된 의식의, 흐름
계란에서 시작된, 의식의 흐름
이런 식으로 쉼표를 이용해서 이걸 명확하게 해줘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의식이 시작된 것도 맞고 흐름이 시작된 것도 맞아서
그냥 시적 허용으로 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