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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너는 틀렸다.

minigb 2022. 4. 10. 15:59

예전에 학교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퇴근하고 오만상 짜증 200%였는데

 

헬스장 가서 무게를 풀로 쳤는가?

- Yes

샤워할 때 디즈니 OST (오늘은 언더더씨)를 틀어놓고 따라 불렀는가?

- Yes

혹시 가사 중에 "언더더씨" 파트만 따라불렀는가?

- 부끄럽지만 Yes

그래서 지금 기분 좋은가?

- Yes

 

"정신이 신체의 시녀다."

"데카르트, 너는 틀렸다."

 

맨 마지막의 ‘데카르트, 너는 틀렸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마음속에 지니고 다녔다.

지난주 내내 기분이 꿀꿀했는데, 상황상 운동을 못 했던 것도 있지만 기분이 안 좋다 보니 운동하기 싫어졌다. 그러다가 오늘, 또 음의 사이클을 발견한 거 같아서 이걸 끊어내고자 운동하러 갔는데, 첫 세트부터 느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니까 역시 정신이 맑아진다.

 

2014학년도 수능 국어영역 B형 19~22번 문제의 지문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지문 초반에는 정신과 신체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심신 이원론을 소개하면서 그 종류인 상호 작용론, 평행론, 부수 현상론을 설명한다. 그러다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는 이 이론들은 모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전제를 뒤엎고 이 둘이 동일한 것으로 보는 심신 일원론 (동일론)을 설명한다.

 

이렇게, 수능을 준비하면서 반복적으로 읽었던 기출 문제 지문 중에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한동안 이 지문을 생각하면서 나는 심신 일원론이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보니 심신 이원론 중 '정신적 사건과 육체적 사건이 서로에게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라는 상호 작용론도 맞는 거 같다.

(상호 작용론에는 '서양 근세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정신이 어떻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육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는데, 그럼 서양 근세 철학의 관점에서는 왜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봤던 걸까. 기출 문제 지문 오랜만에 읽어보니까 재밌네. 수능을 준비할 당시의 내 머리가 지금처럼 생각으로 가득했다면 결과가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다.)

 

어쨌든 간에, 정신과 육체는 서로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정말 긴밀한 관계이거나 혹은 결국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아무리 기분이 꿀꿀해도 무조건 매일 운동하면서 심장 박동수를 높여야겠다.

사실 매번 할 수 있는데 또 완벽주의가 발동해서 ‘오늘 가더라도 근력 운동 ~~ 하고 유산소 운동 ~~ 다 하는 건 힘들 거 같아.’라는 마음으로 안 가게 되는 거 같은데.

그냥 가볍게 유산소 운동만 짧게 하더라도 꼭 가야지.

 

기분이 꿀꿀할 때마다 속으로 ‘데카르트 너는 틀렸어!’를 외치면서 몸을 일으켜야겠다.

(근데 이것도 정말 진심으로 힘들 때는 안 통하더라… 한 번은 이 생각하면서 운동하다가 눈물 날 뻔했다. 뭐든 적당한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