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일기 || 의식의 흐름 || 선택과 집중

minigb 2022. 5. 11. 06:14

22.05.10.화
날씨가 미치게 좋은 날

 

아침에 동기 친구들이랑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그리고 수업이 휴강 돼서 운동복을 사러 갔다.
운동복을 사서 입으면 헬스장 옷보다 몸이 더 잘 보일 거 같아서 고민하던 중에 필라테스도 시작할 겸 사기로 했다.
근데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미루다가 오늘 휴강이 기회인 것 같아서 사러 갔다.

 

가끔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살펴보는데 젝시믹스가 정말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우선 젝시믹스부터 갔는데,
예전부터 느꼈지만, 개인적으로 로고플레이가 뭔가 아쉽다.
XEXYMIX 라는 약간 발칙한 느낌의 문구가 허벅지 중앙에 위치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그 외에 X를 형상화해서 만든 로고도 막 '아 너무 예뻐!!!!' 이런 건 아니라서
이거 때문에 다른 브랜드를 사려고 했는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입어 보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른 브랜드에서는 또 다른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는데 검색해보니까 젝시믹스가 그걸 커버한다고 했다.
그래서 로고플레이 vs 치명적 단점 중에 전자가 승리하여 결국 젝시믹스로 돌아갔다.

근데 이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배송받고 별로면 환불할까 했지만, 시간 낸 김에 오늘 무조건 운동복을 사겠다는 굳은 의지로 다시 매장에 갔다.
그리고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직원분이 정말 친절하게 제품 안내해 주시고 피팅한 거 보면서 사이즈도 설명해주시고 색상 매치도 추천해주셨다. 감동받았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의식의 흐름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마케팅에서 홍보 모델이 정말 중요한 거 같긴 하다. 큰 비용을 들이면서 유명인을 섭외하는 데에는 정말 이유가 있다.
젝시믹스도, 아무리 헬스장에서 많이 보였어도 XEXYMIX 에서 오는 어감이 발칙하다는 것 외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광고 모델이 2PM인 걸 보고 '2PM이 광고할 정도의 브랜드란 말이야?!' 라는 생각에 인식이 확 달라졌다.
이거랑 비슷한 게, 저주파 마사지기 브랜드인 '클럭'도, sns에서 아무리 광고해도, 그 sns 광고 특유의 감성 때문에 그냥 흔한 이상한... 제품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배우 박민영이 광고하는 걸 보고 갑자기 신뢰도가 급상승했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나이키 vs 아디다스
중에 나는 아디다스인 거 같다.
근데 일반적으로는 나이키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많은 거 같다. 평상시에 길에서나 헬스장에서 나이키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 결정적으로, 무신사 실시간 검색 순위를 보면 1~10위에 반팔, 조거팬츠 등 옷 종류에 대한 게 많은데, 그 사이에서 5위쯤에 항상 나이키가 있다. 특정 종류의 옷을 사려는 사람만큼 '나는 그냥 나이키가 궁금해!'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거다. 좀 충격받았다.
그럼에도 내가 아디다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초등학생 때 벨크로 운동화를 졸업하면서 산 첫 끈 운동화가 아디다스였고, 중학생 때 재미있게 본 '댄싱9'이라는 프로그램에 아디다스가 스폰서여서 아디다스 제품이 많이 나왔는데, 그때 그것들을 너무 예뻤고, 그 후에 내가 좋아하는 송민호나 블랙핑크, 손흥민 선수가 아디다스의 모델이어서 아디다스 제품을 접할 일이 많았고, 그것들이 다 정말 예쁘고.
이 모든 게 합쳐져서 그냥 아디다스를 되게 좋아하는 거 같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매 학기 진로 특강이 열렸는데, 한 번은 아디다스 마케터 분 강의를 들었다. 오래전이라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청소년기로 막 접어드는 시기가, 아직 결제는 부모님이 하지만, 그래도 어떤 걸 살지는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하는 때라 그 시기의 사람들을 타겟한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럼 결국 결제를 하는 부모님을 타겟하는 건 어떠냐고 질문했는데, 청소년기에는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선택을 고집하고, 막연히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그게 쌓여서 취향이 확고해지는... 그런 시기라고 하셨다. 지금 보니까 내가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던 거 같다.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나한테 아디다스라는 브랜드가 자리 잡은 것도 청소년기인 듯...? 청소년기의 나의 마음에 불을 지펴버린 거야.


다시 일기로 돌아와서
운동복을 다 사고 집에 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예뻤다. 너무너무너무 예뻤다.
여의도를 되게 좋아한다. 나무가 많고 한강이 가깝고 높은 건물들이 많은 게 깔끔하면서도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빌라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이름표를 목에 건 직장인들이 멋있다.
그중에서도 파크원의 빨간 건물을 정말 좋아한다. 빨간색을 좋아해서 더 그런 거 같기도.
날씨까지 미치도록 완벽한 날에 여의도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분위기를 즐겨서 기분 좋았다.
오고 가는 길에 버스 타면서 한강도 많이 구경하고.

 

그리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운동하러 가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했다. 내가 피곤한 정도를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렌즈를 끼고 뺄 때 눈이 얼마나 아픈가인데, 렌즈가 눈을 긁는 듯한 느낌이 들면 정말 피곤한 거다.
오늘도 그러면서 눈이 너무 아파서 딱 10분만 자려고 누웠는데 두 시간이나 자버렸다. 허탈했다.
거의 밤 11시 20분쯤이 돼서 운동하러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오늘 내가 운동 열심히 하겠다고 했더니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말을 들어서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운동하러 갔다.

 

40분쯤 도착했는데 사람이 꽤 많았다. 새삼 세상 사람들 정말 열심히 산다고 느꼈다. 근데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좀 웃긴 게,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나도 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일 거다.

 

시간이 너무 늦으면 집에 갈 때 무서울 거 같아서 적당히 하고 집으로 왔다.

 


-
'선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따릉이를 안 타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갈 때는 따릉이를 타고 가고 올 때는 버스를 타는 거였는데, 막상 따릉이 탈 생각 하니까 너무 지칠 거 같았다.
그래도 날씨가 아까워서 약간의 의무감에 따릉이를 타려고 했지만
오늘 외출의 주목적은 운동복을 사는 것이니 따릉이를 타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착해서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나는 운동복을 사러 왔다는 걸 계속 생각하면서 우선 운동복을 둘러봤다.

 

또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자면
나는 더현대서울을 정말 좋아한다.
ㅋㅋㅋㅋㅋㅋ
세상에 더 멋진 곳들이 많겠지만,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는 가장 번쩍거리는 곳인 거 같다.
갈 때마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뿜어나온다.
이 세상은 이렇구나,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흘러가고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자극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한때는 의무감을 갖고 숙제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긴 한다. 못 하는 거 뿐이지...

 

그래서 오늘도, 더현대를 갔으니 이것저것 구경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지만, 오늘의 주목적은 운동복을 사는 거라는 걸 계속 상기시키면서 거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길 잘했다. 운동복 고르는 것만 해도 이렇게 피곤했는데, 이것저것 구경하기까지 했으면 체력이 정말 방전됐을 거 같다.

딱 눈 앞에 놓인 거 하나에만 집중하자
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나는 너무 욕심이 많은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집중을 못 하는 거 같기도.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건데,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구나.
이 좋은 날씨에 따릉이를 타야 한다는, 그리고 더현대까지 갔으니 꼼꼼히 구경해야 한다는 의무감.
이 의무감은 결국 내가 만든 건데...
내가 욕심이 많아서.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싶어서...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하는데 말이다.
자잘한 욕심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욕심 덕분에 내가 정말 많이 느끼고 배우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오늘 할 게 너무 많은데, 이 좋은 날씨를 느끼고 싶어서, 운동복을 입어 보고 사고 싶어서, 시간이 애매하지만 그래도 운동하고 싶어서 그 모든 걸 다 했고, 지금도, 그냥 생각만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이야기들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이 새벽에 안 자고 있다.
그리고 오늘
미치게 좋은 날씨에서 내가 여의도를 정말 꽤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고
매장에 가서 옷을 살 때 내가 입은 옷이 사이즈가 맞는 건지, 여기엔 어떤 색이 어울릴 거 같은지 여쭤봤을 때 설명을 들으면서 또 많은 걸 배웠고
오랜만에 스쿼트 하면서 심장 박동수를 높였고
지금 글을 쓰면서 본질과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과 욕심이 너무 많아서 사소한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이 어쩌다 보니 나에게 '의무감'으로 다가왔다는 걸 깨달았다.

 


매 순간이 정말 선택의 연속이다.
식사마다 방울토마토를 하나 더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필라테스 하고 싶었다고 진짜로 하게 된 것도
할 게 정말 많은데 시간 내서 운동복을 사러 간 것도
그러다 글을 쓰게 된 것도
그걸 오늘 무조건 끝내겠다는 심리로 늦은 시간에 홍차를 마신 것도
근데 시간이 계속 늦어져서 배고파서 방울토마토를 꺼내 먹은 것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일을 벌여야 하는데 일을 벌여놓고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데 그 모든 게 사실은 내가 그걸 다 감당할 수 있는 건데 내가 못 해내는 것 같은 것도
그래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러다 또 과연 그게 맞는지 또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하는 사소한 선택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늘만 하더라도, 헬스장 가서 몸 풀려고 매트에 앉은 게 밤 11시 45분이었는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까먹지 않으려고 당장 기록하고 싶어서 막 적었더니 12시가 됐다.
그러고 나서 몸을 조금 덜 풀더라도 바로 운동했거나 중간에 조금 덜 쉬었거나 그냥 조금만 더 했다면 세트를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몸 덜 풀면 안 좋을 거 같았고 중간에 충분히 안 쉬면 이상한 데 힘주면서 버틸 거 같았고 시간이 더 늦으면 집에 가는 길이 더 무서울 거 같아서 그만했다.

그냥 정말 순간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서 이 결과를 만들어낸 거다.


욕심이 많으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중에서 선택할 일도 많다.
그러니까 정말. 선택의 연속이야.
매 순간 이걸 선택함으로써 무엇을 얻고 잃을 것인지
보고 판단해야 해.
선택을 잘해야 해.

좀 무섭기도 하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내가 선택한 건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시간이 삭제되는 거 같다고 하니까 아빠가 앞으로 더 심해질 건데 벌써 그러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모르겠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아이유는 스물셋에는 몰랐던 걸 스물다섯에는 이제 알 것 같다고 했는데
나도 스물다섯쯤 되면 알게 되려나.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건가.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려나.
아니면 아빠 말대로 더 복잡해질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