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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파업한 밀라노의 한가운데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고 인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 3

minigb 2024. 3. 3. 17:38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밀라노 중앙역에 아침 6시쯤 도착했다.

 

기차 타고 공항에는 7시 20분쯤 도착
해 뜨는 빛이 들어오던 게 정말 예뻤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짐 맡기고 들어가니 면세점이 있었다. 8시 40분이었다.

비행기 탑승은 9시 10분부터 9시 25분. 길을 쭉 따라 가면 될 테니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면세점에서 선물을 샀다. 학기 중에 자리를 비워서 죄송했던 캡디 팀원분들과 마지막까지 학교 프로그래밍 경진대회 운영으로 바빴을 학회 운영진분들의 것을 챙겼다.

여담인데, 선물을 정말 신중히 골랐다.
한국에서 쉽게 살 수 없는 것을 주고 싶었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것이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하나가 마음에 들면 그게 한국에서 흔치 않은 게 맞는지 검색해보고 하느라 (...) 정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선물에는 이러한 제 마음도 있었답니다! ㅋㅋㅋㅋ

결제할 때 되니까 거의 9시 5분이었다.
조금 큰 일 난 거 같았다. 그래도 탑승 게이트를 열심히 찾아갔는데

 


출국 심사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순간 내가 가야 하는 곳이 여기가 아닌 줄 알았다.

여권을 직원이 받아서 한 명씩 일일이 확인하는 구조였고, 심지어 그 창구들이 다 열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옆에 EU 국가 국민이 통과하는 구역에는 인천 공항에서처럼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텅텅 비어있었다.
답답했다.

비행기 탑승 마감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직원한테 나 앞으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안 된다고 했다.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어쩌겠어. 그냥 기다리기 시작했다. 여기 줄 선 사람 중에 나랑 같은 비행기 타는 사람도 있겠지.

문득, 예전에 수하물 위탁을 하고 나면 그 안에는 혹시 위험한 게 들었을 수 있으므로 해당 승객이 다 타기 전에는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는다고 하는 걸 본 게 생각났다.
아 그러면 나 수하물 맡겼으니까 조금 시간을 벌 순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와중에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 짐을 빼서 해결할 수도 있는 거잖아.
내 앞에 이 줄이 줄어드는 게 빠를까, 그 짐을 찾는 게 빠를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줄 서 있다가 내가 가방에 꽂아 두었던 물병이 떨어졌는데 뒤에 계신 한 부부가 그걸 주워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여쭤봤다.

이 내향형 인간이 대체 어디서 그런 동기가 생겼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 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분이 아 서울은 인천에 공항이 있지? 하시면서 예전에 부산에 학회가 열려 가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여쭤보니 전자공학 분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비행기 시간이 언제인지 물었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렇게 얼마 안 남았는데도 직원들이 shortcut을 안내해주지 않는단 말이야? 라면서 공감해주시고는
그때 새치기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너도 앞으로 조금씩 이동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ㅋㅋㅋㅋ
좀 웃기긴 한데.

누가 새치기하면 사람들이 온갖 야유하던 중이었어서 그럴 생각을 그냥 안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응원을 조금 받고 나니 용기가 났다.
그래도 조금 눈치 보여서 그냥 조금씩만 앞으로 가다가도 많은 진전이 있진 않았다.

또 몇십분이 흘렀고 몇 줄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몇 줄 남아있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바를 그냥 넘어가기 시작했고,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직원이 그냥 보내주기도 하던 때였다.
그걸 보고 아 나도 진짜 가야 할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멀리 있는 직원한테 내 비행기 시간이 ~다, 저기 심사대 건너편에서 사람을 찾는 게 나라고 (마침 그때 건너편에서 한 직원이 내가 타야 하는 항공사 팻말을 들고 서있었다) 나를 보내달라고 샤우팅 하기 시작했는데
직원은 들은 체도 안 했지만 그 주변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은 내 비행기 시간을 듣고 많이 놀라셨던 건지 다행히도 나한테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마침 그때 아까 이야기 나눴던 분들도 나에게 또다시 그냥 가라고 격려(?)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냥 바를 넘어가서 심사대 앞에 섰다.
막상 그러고 보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귀국했답니다.

비행기 좌석에 앉고 나니 공항 상황으로 인해 몇 분 더 대기할 거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내가 가장 마지막이었을 줄 알았는데 몇 명 더 있었나 보다.
아니면 내가 마지막이었던 건 맞고 그냥 한 번 더 확인해야 해서 그랬던 걸 수도.

 

-

11월 중순에 있었던 일 이야기를 이제야 마무리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인생을 되돌아보았다’라고 제목 지었을 때는
시내 구경 갈 때 보조배터리를 챙기지 않았던 거, 면세점 구경하기 전에 탑승 게이트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에서 온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아직은 한 번도 부주의로 인해 나락에 떨어져 본 경험은 없어서 매사에 안일한 거 같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그런 것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다른 게 보인다.
혼자 시내 구경하다가 휴대폰이 꺼졌을 때, 탑승 마감 시간이 지나서도 앞에 긴 줄이 있었을 때
흥분하거나, 패닉하거나, 화를 내는 거 없이 놀랍도록 침착했다.
그냥 그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일을 해결했다.

삶에 찾아드는 많은 이슈도 마찬가지일 거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면 그냥 침착하게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답이다.

늘 그랬던 거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요즘도 고민과 걱정이 많다.
책임져야 하는 것들을 잘 끝내고 싶고 사소한 실수를 줄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모두 그 끝엔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
이런 마음가짐으로 아무튼 이번 학기, 다가오는 일들 모두 파이팅이다.

 

 

https://blog.naver.com/mini_gb/223371763934

 

교통 파업한 밀라노의 한가운데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고 인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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