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es

『연금술사』 - (1)

minigb 2024. 3. 16. 00:47
“하긴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숲의 요정들이 말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놀란 요정들이 반문했다.
호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양들은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전혀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걸 테고.’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물과 먹이뿐이었다. 자신들의 양치기가 안달루시아의 맛있는 목초지들을 많이 알고 있다면 양들은 언제까지나 그의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끝이 없으니, 양들을 따라가다보면 오래지 않아 더욱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양들이 새로운 길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 양들은 목초지가 바뀌는 것이나 계절이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지. 저놈들은 그저 물과 먹이를 찾는 일밖에 몰라.’ 산티아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지도 모르지. 나만 해도 그 소녀를 알게 된 후로는 다른 여자들 생각을 안 하니까’

 

꿈을 풀이해달라고 온 게지. 꿈이란 곧 신의 말씀이지. 신이 이 세상의 언어로 말했다면 나는 자네의 꿈을 풀어줄 수 있어. 그러나 만약 신이 자네 영혼의 언어로 말했다면 그건 오직 자네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네.

 

“바로 그거야! 그래서 풀기 어려운 꿈이라고 이야기한 거지. 지극히 단순한 것이 실은 가장 비범한 것이야. 현자들만이 그런 것을 알아볼 수 있지. 자, 이제 난 손금 보는 법이나 연구해봐야겠어. 난 애당초 현자는 못 되니까 말야.”
“어떻게 제가 이집트까지 간단 말이에요?”
“난 그저 해몽만 할 뿐이야. 그걸 현실로 만드는 건 내 일이 아니야.”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현실로 끌어낼 방법이 없는 꿈속의 여인 같은 것이니 말이다.

 

“자기 몫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런데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기를 치고 있다네.”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기라뇨?” 산티아고가 놀라서 물었다.
“우리 존재에게 주어진 어떤 정해진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고, 결국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이야기 말야. 터무니없는 소리지.”

 

“자네는 양을 몇 마리나 가지고 있나?” 노인이 말했다.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노인은 산티아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문제로군. 자네가 양을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자네를 도와줄 수 없으니 말이야.”

 

산티아고가 허리를 숙이자, 노인의 품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너무도 강렬해 눈이 멀 것 같았다. 노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잽싼 몸놀림으로 품안의 광채를 겉옷으로 가렸다. 광채가 사라졌고 눈부심도 가셨다.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
노인은 책장을 넘기고는 아주 맛있게 한 페이지를 읽었다.

 

지난주에는 어떤 보석 채굴꾼에게 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 채굴꾼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었다. 에메랄드 하나를 캐기 위해 오 년 동안 강가에 서 99만 9천9백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마침내 그는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그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돌 하나만, 단지 돌 하나만 더 깨뜨리면 되는 그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아의 신화, 그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노인은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했다. 노인은 한 개의 돌멩이로 변해서 채굴꾼의 발 앞으로 굴러갔다. 오 년 동안의 보람 없는 노동에 한껏 화가 나 있던 채굴꾼은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아직 손에 넣지도 못한 것을 두고 약속을 하겠다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양치기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는 늙은 왕의 이야기를 이해했던 것이다. 그는 방랑을 좋아하지만 결코 자신의 양들을 잊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는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양들 앞에서도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장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향에서도 멀리 떨어진 낯선 곳이었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신은 불공평했다. 오직 꿈 하나만 믿었던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세상을 보는 거지.’

 

표지. 산티아고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보석을 주워 다시 배낭 안에 넣었다. 보석들은 원하면 그 구멍으로 다시 빠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배낭을 꿰맬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남에게 물어봐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이해했던 것이다.

 

산티아고는 텅 빈 시장을 다시 한번 바라본 후, 조금 전 느꼈던 절망을 털어냈다. 이곳은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던 일이었다. 그는 진정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어했다.
아직 피라미드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다른 어떤 양치기보다도 먼 곳까지 와 있었다.
‘아, 만약 그들이 배로 겨우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이렇게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산티아고는 새롭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전에 경험했던 것들도 있었지만 길을 떠난 후에 새로운 눈으로 새삼스레 그 숨은 의미를 깨치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전에는 너무 익숙해 아무런 깨달음도 주지 않았던 것들로부터.

 

상점 주인은 점원의 말을 충분히 알아듣고 있었다. 청년이 그의 가게에 나타난 것부터가 이미 하나의 표지였고, 금고에 돈이 늘어가면서 상점 주인은 이 스페인 친구를 고용한 걸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죠?” 산티아고가 물었다.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자네는 양이나 피라미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그걸 실현하길 원하지. 그런 점에서 자넨 나와 달라. 나는 오직 메카만을 꿈으로 간직하고 싶어.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사막을 가로질러 성스러운 반석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고, 율법에 따라 그 바위를 만지기 전에 광장을 일곱 바퀴 돌고 있는 나 자신을 눈앞에 그려보았지.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그날 상점 주인은 산티아고에게 진열대를 만들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크리스털 그릇을 사고파는 일, 무언의 언어 그리고 표지들 같은 중요한 것들을 배웠으니 말이다. 어느 날 오후, 산티아고는 언덕 위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비탈길을 힘들여 올라왔는데 목을 축일 만한 곳이 없다고 불평을 했다. 산티아고는 이제 표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곧장 상점 주인에게 가서 말했다.
“언덕을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차를 팔면 어떨까요?”
(중략)
“자네가 크리스털 잔에 차를 담아 팔면 가게 일은 더 잘될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해.”
“좋은 일 아닌가요?” 산티아고가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내 삶에 무척 익숙해져 있네. 자네가 오기 전에 나는 내 친구들이 파산도 하고 가게를 키우기도 하며 변화하는 동안 그저 같은 장소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항상 우울했지. 그러나 지금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지금의 이 가게가 내가 바라던 꼭 그만큼의 가게라는 걸 알게 된 거지. 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달라지고 싶지도 않네. 난 지금 이대로의 내 상황이 만족스러워.” 산티아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인은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게 복을 가져다주었어. 그리고 이제 나는 새로운 한 가지를 알게 되었네. 모든 복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야. 난 인생에서 더이상 바라는 게 없었다네. 하지만 자네는 내가 까맣게 잊어버렸던 부와 미래를 보게 만들었지. 내게 여러 가지 큰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하지만 이전의 내 상태보다 더 좋게 느껴지지가 않아. 내가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정작 그것들을 원하지 않으니 말일세.”
(중략)
그때 상점 주인이 불쑥 말했다.
“마크툽.”
* 대개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는 아랍어로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 있는 말이다’라는 의미.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옮긴이)
“그게 무슨 말이죠?”
“자네가 아랍인으로 태어났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지.” 상점 주인이 대답했다.
“굳이 번역하자면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지.”
상점 주인은 담뱃불을 끄면서 산티아고에게 크리스털 잔에 차를 담아 손님들에게 팔아도 좋다고 했다.
때로는 인생의 강물을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난 자네가 자랑스럽네. 자네는 이 크리스털 가게에 생기를 가져다주었어. 하지만 나는 메카에 가지 않을 거야. 자네도 그걸 잘 알고 있겠지. 자네는 또한 자네가 양을 사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누가 그러던가요?” 산티아고가 놀라서 소리쳤다.
“마크툽”
늙은 크리스털 상인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산티아고를 축복해주었다.

 

물론 양들은 그에게 중요한 다른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바로 그 언어를 통해 지금까지 가게를 키워올 수 있었다. 그건 사랑, 열정, 무언가를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감동의 언어였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늙은 왕은 이런 말도 했었다.
그러나 그 늙은 왕은 도둑과 거대한 사막,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일한 시간들과 그동안 배운 모든 좋은 것들은 그에게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었다. 안타까움 한편으로, 처음 가져보는 강렬한 자기 확신의 느낌이 기분 좋게 몸을 감쌌다. 세상을 정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순간, 그는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그는 언제든지 양치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크리스털 장수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엔 어쩌면 다른 보물들이 더 많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왕을 만났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는 사람 곁에 항상 있다네.” 늙은 왕은 말했었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저, 최정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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