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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책방] 쓸 만한 인간 - 박정민

minigb 2021. 6. 27. 04:34

2주에 한 번씩 책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는데 4주 만이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태함이 부끄러움을 이겨버렸다.
그래도 변명하자면 시험 기간..이었다
2주 전에 못 한 거까지 이번 주에 두 권에 관해서 쓰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 주말에 써야겠다.

책을 읽고 쓰는 글이라고 해봤자 후기나 독후감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적는 게 될 거 같다.

진짜 시작!


 이 책은 박정민 배우님이 쓰셨다. 지금은 작가님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지만. 2013년쯤에 Topclass라는 잡지에 매월 글을 연재하셨던 걸 묶어서 2016년에 책을 출판했고, 2019년에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초판은 품절돼서 이제는 못 구하지만 다행히 나는 둘 다 갖고 있다. 개정판에는 중간중간 일러스트가 추가됐고, 또 끝에 몇 편의 글이 더 실려 있다. 그리고 작가님께서 이전 글 중에 상처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수정했다고 하셨는데 아직 어떤 부분인지는 못 찾았다.

왼쪽이 개정판, 오른쪽이 초판이다.

 박정민 배우님은 영화 <동주>로 처음 알게 됐고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고 팬이 됐다. ('팬'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좀 이상하다) 그 영화에서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서번트 증후군의 장애인을 연기하시는데 정말 그 사람 자체인 것처럼 완벽하게 장애를 연기하시고 피아노를 치신다. 그때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시는 걸까, 얼마나 연습하셨을까 싶으면서 그냥 너무 멋있었다. (내가 그 당시에 느낀 걸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 어휘력이 안타깝다)
 그러면서 배우님의 팬이 되었고, 학교에서 이런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그 친구랑은 연락이 끊겼네. 잘 지내니..?ㅠㅠ 잘 지내길 바라. 항상 응원해. 널 잊지 않아) 그 친구가 배우님이 쓴 책이 있다고, 자기 집에 있으니 수능 끝나고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수능 다음 날에 책을 갖다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절반을 읽어버렸고, 그냥 이 책은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재고가 얼마 안 남아서 서울에 와서 서점에서 샀다. 그때 내가 책 안쪽에 '조금이라도 덜 행복할 때 이 책 보기. 이 책 보고 행복 세게 하기. 그리고, 다 잘 될 거라고 편히 마음먹기'라고 적어뒀는데, 그만큼 이 책은 나한테 정말 의미 있는 책이고, 많이 보기도 했다.
 장르가 에세이인만큼 글이 굉장히 잘 읽힌다. 사실 그보다도 배우님(혹은 작가님)의 필력이 엄청난 것 덕분이다. 그리고 배우님의 유머 코드가 나랑 잘 맞고, 각종 비유도 다 너무 좋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소개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근데 침대에 누워서 읽고 사진 찍어서 사진 구도가 별로다.. 다음엔 좀 더 잘 찍어야겠다.


1. 성장해버렸다

~하는 교훈을 얻고 또 성장했다. 성장해버렸다. 성장쟁이다. 이놈의 성장판은 언제 닫히려는지.

'성장해버렸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가끔 이렇게 쓰기도 한다.


2. 야구

 박정민 배우님이 한화 팬이셔서 내가 응원할 야구팀을 고를 때 한화팬을 할까 고민했었다. 그때 친구가 말린 덕분에 다행히 아니다. (휴..!)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이 말을 전혀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하하하 할 수 있으니 그사이에 나에게 이런 변화도 있었구나 싶다.


3. 기록

 예전부터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아직 얼마 안 살긴 했지만 몇 년 전의 기록을 보면 정말 재밌다. 과거의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고, 또 다른 의미로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다. 이전의 사건들은 잊지 않을 수 있지만 그때 느꼈던 날것의 감정들은 기록해놓지 않으면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기를 정말 꾸준히 쓰려고 노력 중이다.
 스무 살의 내가 열일곱의 내가 쓴 일기를 보고 갑자기 운 적이 있다. 가끔 뜬금없이 울 때가 있긴 하지만 그땐 왜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좀 힘들었는데 3년 전의 내가 행복해 보여서 그랬는지. 그냥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저 '동생 주제에 꽤나 위로를 잘한다'라는 부분이 너무 공감됐다.
 그렇지만 항상 위로를 받는 건 아니다. 몇 주 전에는 열아홉의 내가 쓴 글을 봤는데, 그때의 내가 지금과 똑같은 말을 하는 걸 보고 몇 년 동안 결국 그걸 해내지 못했다는 걸 체감했다..
 그래도 뭐 과거의 나의 기록을 보는 건 언제나 정말 재밌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 조금 귀찮지만 잘 기록해두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4. 잘 듣고 있습니까

키야
잘 듣고 있습니까

 나는 MBTI를 나름 좋아하는 편이라 한때는 내가 INTP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재미있어했다. 그중에서 T는 Thinking을 의미하는 데 반대 성향은 F로 Feeling이다. 대략 이성적인지 감정적인지에 대한 구분인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도록 돌려 말하는가 / 혹은 어떤 사람이 겪은 안 좋은 일을 이야기할 때 해결책을 제시하는가, 아니면 그 상황에서 느꼈던 것에 대해 공감해주는가. 이런 게 T와 F의 차이를 말하는 대표적인 예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도 실제로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일이 있겠어? 했는데
 작년에 이걸 실제로 경험했다. 작년 9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학회 코드포스 스터디가 끝나고 다 같이 점심으로 짬뽕을 먹으러 갔다. (수저가 아니었음ㅜ) 그때 건이가 사레들려서 기침을 많이 했는데, T인 내가 '물 마셔'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F인 효규가 '힘들겠다.'라고 했다. 와. 그때 진짜 충격받았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힘들겠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지?
 근데 이럴 때마다 T가 굉장히 무뚝뚝하다고 오해를 받곤 하는데, T들은 상대방이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거지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MBTI 이야기가 길었는데, INTP 특성 중에 나랑 맞는 부분이 많고 또 어감이 좋아서 나는 INTP라고 항상 얘기했는데 최근에 MBTI 검사를 영어 버전으로 했더니 다른 타입이 나왔다. 한글 버전으로 할 때 번역체 때문에 제대로 대답 못 한것들을 영어 버전에서는 잘 대답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INTP보다도 새로 나온 그 MBTI가 나랑 완전히 맞다..
 MBTI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저렇게 T 타입의 성향이다 보니 이야기를 들을 때 해결책을 내주는 등의 측면에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예전에 책에서 이 부분을 보고 한동안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또 최근에는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걸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정말. 그냥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5. 비대면

 여기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1) 만나지 않아도 원격으로 인터뷰. 몇 년 후의 언택트 시대를 내다보셨다
2) '신기가 방기다' 이 표현도 정말 좋아한다. 이 블로그에 있는, 예전에 쓴 걸 옮겨놓은 몇몇 글 중에 이 표현을 쓴 것들이 있는데 그만큼 이 표현을 정말정말 좋아한다.


6. 기우

 기우
 쓸데없는 걱정. 고대 중국 기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완전히 쓸데없다고 보긴 어렵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많은 곳을 갔을 때 비상 상황이 생길 것을 걱정하여 비상구를 살펴놓는다거나 하는 건 꼭 필요한 거다. 그치만.. 제가 무슨 말 하려는건지 아시죠!)
 나는 한때 걱정이 정말 많았는데, 위에서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중 대부분이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잘못을 저질렀을까봐, 누군가 내가 한 일을 못마땅하게 여길까봐, 내가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까봐 등등. 그래서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한 번은 엄마가 '근데 너한테 아무도 뭐라고 안 했잖아.'라고 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걱정하냐고.
 그 말이 맞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냥 앞으로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한 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그 걱정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뭐든지 적당한 게 중요한 거니까.
 그래서 내가 이 '기우'라는 고사성어를 알게 된 뒤로는 심적으로 정말 많이 안정됐는데, 내가 무슨 걱정을 할 때마다 '아 이거 기우구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 그리고 아마 80% 이상의 확률로 그게 맞을 거다.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 크게 관심있지 않으니까.
 그냥... 그런거다. '기우'인거다.
 작가님도 비슷한 내용을 적으셨길래 찍어봤다.


7. 내가 좋아하는 거

너무 좋다. 이런 표현


8. 앞으로 나는

 이 부분은 리뉴얼 버전에 추가된 글 중 하나의 일부이다. (사실 7번도) 이 부분은 넷플릭스 드라마 <Black Mirror>에서 볼 수 있는, 기술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다가 영화 <어벤져스>로 이야기가 넘어온 거다. 그 중에서 어벤져스에 관한 내용이 조금 색다른 시각인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갖고 왔다.
 대학교 자소서를 준비하면서 나는 어떤 공학자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 보조 도구'에 대한 프로젝트를 한 것을 연관 지어서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개발된, 그리고 계속 개발 중인 기술 중 90% 이상은 단순히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들기 위함인 것 같았고, 그것보다 더 해결이 시급한, 다양한 종류의 격차에서 나오는 불평등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오히려 그 격차를 벌리면 벌렸지.
 하지만 그때의 나도 알았고 지금의 나도 안다. 그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린 거다. 그리고 내가 '단순히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은 또 격차를 줄이는 데 사용되고, 또 그런 거다.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은 굉장히 잘못됐다.
 뭐든 간에 중요한 건, 모든 건 결국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다.

머릿속에 있는 걸 너무 함축적으로 말한 거 같다. 그치만.. 그러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많이 있고 가끔은 그것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
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어떤 사람이 될까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혼란스럽고 압도되고 뭐 항상 그러는데 또 생각해보면 언제는 안 그랬는가 싶다.
내가 뭘 하면서 살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는데 계속 답이 안 나온다.
답이 나오는 게 이상한 건가? 그럴 수도
그래도 대충 틀은 있으면 좋겠는데.
계속 고민할 거 같다. 계속.

 최근에는 내가 결국 엔터테인먼트(쓰고 보니 연예인 기획사 같다. 말 그대로 entertaining한 것들을 가리키는 거였다.)랑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이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까 말한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일이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그걸 통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시야를 넓혀나가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근데 또,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분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진짜 그런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끔 내 과거를 생각해보면, 내가 몇 년 전부터 막연히 '그렇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 중에 진짜 나한테 일어난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냥 좋은 생각, 다양한 생각 할 예정이다.
 모르겠다 그냥 계속 고민중이다. 그러다보면 그 와중에 나한테 이런 저런 사건들이 계속 생겨날 거고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 축사에서 이야기한 '점을 연결하는 것'이 많이 와 닿는 요즘이다..


마지막으로
배우님께서 운영하시는 '책과 밤낮'이라는 북카페가 있었는데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북카페인 만큼 책이 정말 많았다.

그 사이사이에 배우님께서 책 추천 이유를 적어두신 쪽지가 붙어있었는데

학교랑 꽤 가깝고 분위기도 되게 좋고 배우님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어서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워낙 카페 자체를 자주 안 가서.. 한동안 안 갔는데
몇 주 전에 6/11(금)에 카페를 마감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그 전날에 마지막으로 가서 카페에 인사하고 왔다.

나한테 이 카페가 의미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작년 이맘때쯤 raa님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을 때 여기 노트북을 들고 가서 BOJ 문제를 막 푼 적이 있다.
그래서 그냥 그 시기의 내가 결의를 다진 것과 관련 있는 곳이라서 되게 뭔가 애틋하고
그런 거 같다
근데 더 이상 갈 수 없다니...ㅠ
마지막은 항상 슬프다...ㅜ

또 이 카페의 특이한 점은 음료를 주문하면 컵 받침에 책에 있는 한 줄을 적어서 주셨는데, 그걸 갖고 가면 그 책을 10% 할인받아서 살 수 있었다.
책의 한 구절이 적혀 있는 그 컵 받침이 너무 좋아서 모아뒀는데 그러길 정말 잘했다.

책도 많이 살걸..
그러면 책과 밤낮 도장이 찍혀있는 책들이 더 많았을 텐데..
ㅠㅠㅜㅠㅜㅠㅜㅜㅠ
아니 배우님 5월 중순만 해도 카페 운영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시더니ㅜㅜㅠㅠㅜ
으악...ㅜㅠㅜ그냥 좀 슬프다...


배우님께서 고려대학교 다니시다가 자퇴하시고 한예종을 가신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책에 그 과정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있는데 나중에 꼭 읽어보세요!
한예종 영상원에 입학하려던 때의 배우님 이야기나 그뿐만 아니라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정말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건 몇 년 전의 나도 느꼈던 거고, 나는 몇 년 동안 바뀌지 않았고, ... 하는 악순환은 그만 해야겠다. 하더라도 짧게..) 앞으로 정말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많이 읽자. 많이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