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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2021년 드라큘라

minigb 2021. 10. 7. 12:31

본 지 두 달 넘었다.
지금까지 본 뮤지컬에 대해서 시간순으로 쓰려고 했는데, 위키드에 대한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 뒷 글들도 쭉 딜레이됐다.
그래서 위키드부터 시간순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서 아쉽긴 하지만 일단 하나씩 써보려고 한다.

7월 말의 나는 뮤지컬을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드라큘라 뮤지컬을 볼까 말까 엄청 고민했는데, 나무위키에서 줄거리를 읽어보니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인가 싶어서 안 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https://youtu.be/yzSibEAnikY

전동석 배우님의 커튼콜 영상을 보게 됐는데,
저렇게 관에서 드라큘라가 나오는 모습이 약간 긍정적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됐다.
근데 김준수 배우님으로 봄
(?)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1. 렌필드
맨 처음에 정신병원에 갇힌 렌필드가 나오는데, 기괴한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를 정말 잘하셨다. 정말. 정말! 뮤지컬을 보면서 느끼는 경이로움을 또 한 번 느꼈다.

2. 처음으로 젊은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씬에서
진짜 육성으로 와.. 했다. 드라큘라가 있던 성에서 뱀파이어 슬레이브들이 조나단의 피를 빨기 시작하고, 그 후에 드라큘라가 조나단의 피를 빨아서 젊어지는데, 그전에는 노인 얼굴의 가면을 쓰고 망토 모자를 쓰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그걸 벗으면서 젊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때의 음악과 김준수 배우님의 자태와 배우님의 빨간색 머리가 어울려져서 정말.. 엄청났다.
그리고 김준수 배우님 특유의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드라큘라의 섬찟함과 잘 어울렸다. 정말로. 멋있으셨다.

3. 기차역 씬
줄거리를 미리 읽어서 이 부분에서 드라큘라가 기차역에서 미나한테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서 열차를 모두 탈선시켰다는 드립을 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로 애드립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한 번은 어떤 배우님이 진짜로 웃음이 터져버리셨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이날 공연의 애드립은 다음과 같았다.
드라큘라: (탈선 드립)
미나: 네?
드라큘라: Just kidding..
미나: (약간 웃으심) 사람을 웃기는 데 재능이 없으시네요
드라큘라: 방금 웃으신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 자체가 유머라고 할만한 게 전혀 없어서 이 장면이라도 있는 게 되게 좋았다. 근데 어떻게 보면 여기서 웃음 포인트가 나올 거라는 걸 전혀 예상 못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극 흐름이랑 조금은 안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엄마랑 같이 갔는데 엄마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해서 띠용 했다고 한다.

4. 전반적인 스토리
전반적인 스토리가 좀 중구난방이다. 미나는 왜 이렇게 선택을 못 하며 대체 뭘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는 느낌. 그냥 스토리 자체가 드라큘라를 잡으러 가자! 하다가 미나는 조나단이랑 드라큘라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러다가 드라큘라가 나타나서 너는 나랑 사랑하게 될 운명이라고 하고, 그러다가 또 드라큘라를 잡으러 가자! 하다가 아니야 드라큘라가 실재할 리가 없어! 하다가 잡으러 가자! 하다가 중간에 미나는 대체 조나단이랑 드라큘라 중에서 누구와 함께하기로 한 건지 모르겠고, 그러다가 미나가 드라큘라를 찾아서 함께하겠다고 하자 드라큘라는 그럴 수 없다면서 자살한다.
???
내가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가사가 잘 안 들렸다.

4. 무대 장치
스토리는 별로였지만 무대 장치는 되게 좋았다. 기본적으로 구역이 나누어진, 회전하는 큰 장치가 있고, 각각의 구역은 상황에 따라서 드라큘라의 성, 미나의 방, 루시의 방, 묘지 등등으로 꾸며진다. 그리고 이게 회전하면서 무대가 전환된다.
https://youtu.be/5cLSOSEQ4SU

오 클립을 찾았다.
오디컴퍼니가 클립을 좀 올려주는 편이구나..
그리고 또 한 번 느끼지만, 정말 영상으로 보는 건 현장의 반의반도 못 담는다.. 그냥 직접 봐야 한다ㅜ

이 영상에서는 무대가 회전하는 게 장면 전환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갈등 상황을 보여주기 위함이긴 하지만, 여튼 이런 식으로 무대가 회전한다.
근데 나는 3층에서 봐서 각도 상 바닥에 있는 레일이 잘 보였는데, 회전되는 판들이 가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해서 해당하는 구역 밖에 서 있으면 정말 위험할 거 같은데..
그리고 예를 들어서 바닥에 쓰러져있다가 무대가 회전해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 레일 안쪽 회전판의 좁은 곳에 정확히 쓰러지시는 걸 보고
1. 와 이걸 어떻게 다 외우시는 거지
2. 저기서 잘못 쓰러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잘못하다가 저기 끼이거나 하면 다치겠다
싶었다.

그리고 아까 말한 렌필드 영상도 찾았는데
이 클립은 아마 정신과 의사가 드라큘라 같은 게 어디 있냐고 할 때 렌필드가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하면서 부른 노래인 거 같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회전하는 거대한 무대 장치에 프로젝터로 배경을 주사해서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적은 비용 + 높은 효율로 무대를 풍성하게 구성하는 좋은 방법인 듯.

5. 불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을 했는데, 위키드 때부터 이 블루스퀘어에 대한 악명이 자자해서 음향이 안 좋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블루스퀘어를 블퀘라고 줄여서 부르다가 불쾌로 부르기도 한다는 것도.
근데 정말.. 좀 심한 수준이었다. 음향 때문에 소리가 뭉개져서 가사가 안 들리고 소리가 커지면 가끔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연을 보는 동안에는 배우님이 실수하신 건 줄 알았는데, 블루스퀘어에 대한 후기들을 좀 보다 보니까 음향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웅장한 부분에서는 갑자기 마이크 소리가 커지는데, 오케스트라 소리는 거기에 맞춰서 커지지를 않아서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이고, 그러다가 배우님의 연기가 끝나고 그 웅장함을 오케스트라가 이어받아야 할 때는 오케스트라 소리가 너무 작아서, 이전까지 배우님이 연기하던 게 오버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3층 맨 끝줄에서 공연을 봐서 이런 문제가 더 심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공연장이라면 공연장 내 소외되는 자리 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위키드를 안 본 게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연장에 MD 파는 곳, 객석 입구, 티켓 받는 곳, 포토존 등에서 동선을 전혀 고려 안 한 것 같았다. 줄을 어디로 서야 하는 지도 모르겠고, 안내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동선 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쪽으로 줄을 서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새치기가 일어나고..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래도 여튼. 재밌었다!
김준수 배우님을 보면서 많이 놀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