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es

[뮤지컬] 2021년 빌리 엘리어트

minigb 2021. 10. 10. 03:33

뮤지컬을 본 지 한 달쯤 됐다
빌리 엘리어트는 중학교 때 도덕 교과서에서 보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 배우님이 이 뮤지컬의 빌리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발레 동작에 익숙하고, 그렇게 유연한 만큼 거미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잘 표현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또 내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상기된 뮤지컬이다.

신시컴퍼니가 뮤지컬 시카고 이후로 올리는 차기작이기도 해서 한참 시카고 보러 디큐브 아트센터에 가면 빌리 엘리어트 광고가 곳곳에 있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최정원 배우님이 나오셔서 볼까? 하던 참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열린음악회 공연 영상을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YouxH11ug

(사실 내가 본 건 2017년 영상인데, 올해 공연한 영상이 썸네일이 더 예뻐서 이걸 올린다.)

가끔 '소름이 끼친다는 건 이런 느낌인가?'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온몸에 신경이 올라와서 민감한 상태가 되는 느낌
이걸 봤을 때도 그런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빌리가 춤을 출 때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이 어린 친구들이 정말 그 빌리에게 빙의된 것처럼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면서 이 친구들은 지금 저 무대 위에서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걸 느끼고 있는 건가 싶고
그리고 정말 너무 잘 한다 진짜로 어쩜 이렇게 잘 할까
하는 온갖 생각이 들면서 정말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결국 보러 감!

왜 때문인지 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미세스 윌킨스로 최정원 배우님, 성인 빌리로 이선태 발레리노님을 보고 싶어서 그중에서 시간이 될 때로 예매했다.
그런데 최정원 배우님은 뭔가 개인적으로 대사하실 때 너무 시카고의 벨마가 생각나서 아쉬웠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 외에 노래나 움직임 같은 건 미세스 윌킨스의 모습이 표현하려고 하셨을 모습대로 잘 전달됐다.

이선태 발레리노님은 예전에 댄싱9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봐서 알게 된 분인데, 그때부터 되게 기억에 오래 남아있어서 보고 싶었다. 근데 성인 빌리가 너무 짧게 나온다. ㅜ

그리고 빌리님은 어쩜... 저렇게 어린데 그렇게 잘하시는지
정말 그냥 너무 놀라웠다.. 너무 놀라워..!
어쩜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프로처럼 본인의 일을 뚝딱뚝딱 해내시나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그치만 빌리한테서 느끼는 경이로움으로 이 뮤지컬에 만족하기에는 스토리가 너무 별로였다.
빌리를 막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고, 그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빌리한테 희망찬 일이 생기려고 하면 또 무슨 문제가 생기고
그러다가 또 희망이 생기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이게 계속 반복된다... 하...
이 중에서 갈등 상황을 하나만 빼면 좋겠다.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이걸 계속 보고 있기에는 조금 지쳤다.

갈등 상황 중에서도 제일 내적으로 분노가 일었던 건
빌리가 오디션 갈 돈을 구하려고 아빠가 더 이상 파업하지 않고 광산에 일을 나가는데
빌리 형은 그걸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우리는 역사 바꾸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거라고 한다.
심지어 본인의 신념과 반대되는 사람이 빌리한테 런던에 오디션 보러 갔다 올 비용에 보태라고 돈을 주니까 그건 더러운 돈이라면서 받지 말라고 화를 내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지금 우리 가족 모두 다 잘 살자고 이렇게 하는 거래
정작 빌리 앞길 막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이건 약간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부분인데
극 중간중간 유머 같은 게 뭔가 되게
암울한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온정과 소소한 행복 같은 걸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고 하나도 안 재미있었다.
ㅠㅠ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극 중에서 힘겨운 상황을 너무 많이 봐서 지쳐 있던 상태라 그게 와닿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뮤지컬에 입문했을 때 처음 본 작품들부터가 지금 내 인생 뮤지컬이 된 시카고, 위키드였고, 그 후에 봤던 뮤지컬들도 쭉 재미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환상과 좋은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이날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뮤지컬에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작품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건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뮤지컬"이니까 좋을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볼 때 그것의 장르가 가진 의미보다도 작품 자체가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뜯어가면서 의미를 찾고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