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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못 정함

minigb 2022. 6. 24. 01:26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 너무 의욕이 없었다. 예전에는 공부하다 보면 재밌어서 '이렇게 재밌는걸!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재밌지도 않고, 사실 재밌긴 했는데, 뭔가 계속 더 잘하고 싶은 의욕이 전혀 없었다. 시험 망하겠구나, 망하면 어떡하지, 재수강해야겠다, 재수강하면 조기졸업 못 할 텐데, 조기졸업을 왜 하려고 하는 거지?, 아 이거 때문이었지. 그럼 이건 왜 하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계획했던 것들에 갑자기 다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이걸 왜 하려고 하는 거지?
에 대한 대답이 꽤 명확했는데, 갑자기 이게 진짜 맞나 하는 생각.
아냐, 사실 맞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냥 더 이상 나에게 자극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친구들한테 너희의 인생의 목표는 뭐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되게 도움이 많이 됐다. 감사합니다.
유튜브에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무기력증을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거.
근데 이렇게 검색해서 보게 된 것들은 별로 도움이 안 됐는데, 우연히 타고 들어가서 본 것 중에 '신사임당' 채널에 정신과 의사 정우열 님이 나오셔서 하신 말씀이 정말 많이 도움 됐다. (1부, 2부, 3부도 있는데 이건 좀 다른 이야기라)

그렇게 깨달은 것들은
1) 감정을 잘 관리한다는 건 어떤 인풋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때그때 잘 흘려보내는 거다. 파도가 들어오면 그걸 잘 타고 넘어가는 것처럼. (오히려 즐길 수 있게 되면 더 좋겠다. 워터파크에서 파도 타는 것처럼) (무친 <어푸>의 'I'm such a good surfer'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해버렸다. 크으...)
2)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건 감정이 쌓여서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그걸 없애버리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 정도의 상태가 될 때까지 이걸 쌓아두면 안 되는 거다. 쌓이지 않도록 그때그때 감정을 받아들이고 잘 보내야 한다.
3) 강철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나도 저런 사람이고 싶다', '나는 왜 저렇게 멘탈이 강하지 못할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런 사람도 있는데, 내가 과연 이럴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오늘도 친구한테 내 상태를 이야기하면서 '쉬고 싶은데 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했다. 그런데 감정이라는 건 결국 상대적인 거다. 나의 감정과 상태를 이해하는 기준을 다른 사람에 둘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거야 결국엔.
4)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은 날에는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였는데, 이유 없이 우울한 날에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왜 이런지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거 같다. 가끔은 이유 없이 우울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내가 오늘 시작해본 건
혼잣말을 하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영상에 나온 걸 보고 한번 해봤는데 되게 좋다.
진짜 웃기긴 하다. 나도 하면서 웃기다.
생각만 하는 거랑 말을 내뱉는 거랑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말에는 힘이 있는 거고,

이게 뇌과학의 차원에서도 근거가 있는데 그건... 저 영상에 자세히 나와 있다. 전 생명과학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래서 평소에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걸 말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장점이
1) 말하는 게 그냥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느려서 생각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 않게 막는다. 가끔 의식의 흐름이 너무 빨라서 거기에 압도됐는데, 말을 하면 생각이 느려질 수밖에 없어서 속도가 적절하게 조절된다.
2) 의지를 다지는 말은 내뱉을수록 좋은 거 같다. 정말 힘이 생기거든. 기합을 불어넣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 거지.

3) 꼭 긍정적인 게 아니어도 일단 말을 내뱉으면 좋다. 오늘 '아 마카롱 먹고 싶다~ ' 했는데 '하나만 먹을까?' 하다가 그냥 '아 그냥 먹지 말까?' 하면서 안 먹게 됐다. 이게 뇌과학적으로, 말을 할 때 뇌에서 양심을 다루는 곳에도 자극을 줘서 그렇다고 한다. 진짜 그런 거 같다.

4) 혼자 있다 보면 말을 할 일이 많이 없는데, 그래서 가끔 물건을 사거나 식당 가서 이야기할 때 말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내 목소리나 발음이 좀 이상한 거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자주 말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고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중학생 때 '또래 상담 도우미'라는 걸 했는데, 그때 교육받았던 것 중에 아직도 기억 나는 게, 상담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거라고 한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내담자가 이야기하다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하는 게 상담이라고.
정우열 의사님도 이 이야기를 하셔서 갑자기 생각났다.

이걸 거꾸로 말하면, 결국 내담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근데 왜?

결국 해결책은 내가 찾는 건데. 공감은 해주겠지만 말이다. 그랬구나. 그때 너의 감정은 어땠어?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근데 그걸 제외한다면, 결국에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럼 굳이 상담받지 않더라도 그냥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되는 거다.

사실 굳이 말이 아니어도 글을 쓰는 것도 괜찮긴 한데, 그래서 원래는 내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일기를 썼는데
근데 이번에는 아무리 일기를 써도 뭔가 안에서 해소가 안 됐다.

그래서 말로 해보니까 뭔가 되게 좋다.
가끔 일기를 쓰는 것 대신에 그냥 카메라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일기를 찍기도 했는데 이것도 되게 좋았다. 일기를 씀과 동시에 현재의 내 모습과 눈빛과 목소리도 기록할 수 있다.

당분간 이것도 자주 해야겠다.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최근에 두 명에게나 들었는데, 나도 받아보고 싶었지만 뭔가 용기가 안 났다. 사실 좀 귀찮기도 했고. 할 게 많아서 딱히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도 맞고.
근데 뭔가 저런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까 결국 입 밖으로 말을 내뱉으면 되는 거 같고, 실제로 해보니까 효과도 있고 해서 일단은 상담받는 걸 미뤄두려고 한다. 언젠가 한 번은 꼭 받고 싶지만.
그리고 상담받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아무리 상담이라도 뭔가 내 이야기를 바닥까지 다 하진 않을 거 같아. 본능적으로 말이 막힐 거 같다.

여전히 나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근데 오늘 하루 종일 쉬고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면서 되게 에너지가 많이 충전됐다.
내일 다시 달려 나갈 준비가 됐을지도 ?!
파이팅.